[슬램덩크] 아쉬운 결말? 단호한 결의의 의미를 알아야 진정한 결말이 보인다.

슬램덩크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말에 대한 아쉬움을 갖습니다. 왜 2차전에서 탈락이냐? 왜 3차전은 안 보여줬냐? 그래서 전국 우승은 누구냐? 등등 말이죠. 이 같은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이 작품이 매우 현실성 있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의 실력 레벨은 다소 오버되어 있지만, 그 외 학교생활, 부활동, 대회의 진행, 체육관과 시설의 풍경 묘사 등 모든 것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스토리를 빼놓고 한 편의 다큐로 봐도 될 정도입니다. 여기에 더해 작가의 화풍이 발전하며 시합 전개의 묘사가 더욱 박력 있게 묘사되면서 엄청난 몰입감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이 작품은 스포츠물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이 허무엔딩처럼 보여진 것은 이 작품이 사실 단순한 스포츠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정체성은 주인공 강백호와 그 동료들이 농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정신적 성장을 이룩한다는 성장 드라마입니다. 결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국대회 2차전인 산왕공고와의 시합을 앞두고 나온 북산고의 안한수 감독의 발언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단호한 결의"가 그것입니다.
작품에서 말하는 "단호한 결의"란 표면적 의미와 내재적 의미를 갖고있습니다. 먼저, 표면적 의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의지'를 말합니다. 전국최강 산왕공고와의 결전을 앞에 두고 안 선생님은 선수들에게 비디오 리뷰를 보여주기 전에 이것을 당부합니다. 꺾일 것인지, 뛰어넘을 것인지 말이죠. 이것은 그대로 내재적 의미로 연결이 됩니다. 그들이 현재의 자신을 뛰어넘어 한층 더 성장할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작품의 메시지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선 이 내재적 의미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백호를 포함한 북산 베스트5는 이 "단호한 결의"에 대해 각각의 테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각자의 개성이 뭉쳐있다는 식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바꿔 말하면 각자 안고 있는 문제가 다르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이들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간략히 짚어보겠습니다.

질풍노도, 강백호
강백호는 그 시절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대변합니다. 그는 중학시절 허구헌날 쌈박질을 일삼고, 불량스러운 빨간 리젠트 헤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인 양호열, 김대남, 노구식, 이용팔 역시 어딘가 하나씩 어긋난 듯한 녀석들이죠. 강백호는 이런 무리의 대표자격인 존재입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이미 중학시절의 소문이 맹위를 떨치며 불량아로 유명한 상태였죠. 이런 그에게 운명 같은 존재들이 나타났으니 바로 채치수, 채소연 남매입니다. 먼저 여동생인 채소연을 만나게 되는데, 정말 뜬금없이 나타나서 정신 빠진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 농구 좋아하세요?". 강백호가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사달이 났을 겁니다. 그러나 강백호가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면서 그의 방황하는 삶에 드디어 이정표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연달아 그녀의 오빠인 채치수를 만나게 되는데, 이 채치수야말로 강백호의 인생에 방향타가 되어준 인물입니다. 강백호는 이 두 사람을 만나 농구의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됩니다.
여기서 강백호는 자신의 운명을 바꿀 또 한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숙명의 라이벌이자 팀동료인 서태웅이죠. 서태웅은 강백호에게 있어서 동력원과도 같은 역할을 하며 그를 농구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빨려 들게 합니다. 강백호는 서태웅에 대한 질투와 동경심을 무의식 중에 자신의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동력원으로 쓰게 됩니다.
강백호는 농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됐고, 노력하는 기쁨, 승부의 냉정함, 환희와 좌절, 동료애 등을 겪으며 농구선수로써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도 빠르게 성장해 갑니다. 이것은 그가 등장 초기에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었던 사람인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를 이룩한 것이죠. 그는 초보자였지만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을 하며 동료들을 따라갑니다. 결국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내며 전국대회 진출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전국대회에 진출한 그는 1차전인 풍전고와의 시합에서도, 2차전인 산왕공고와의 시합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펼칩니다. 그간의 노력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이 폭발하며 최고의 기량을 선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빛나던 그 순간이 그에게 가장 절망의 순간이 되고 맙니다. 루즈볼을 걷어내고 추락한 그는 선수생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등 부상을 입게 됐던 것이죠.

농구광인, 서태웅
서태웅은 농구에 과하게 몰두한 인물입니다. 농구를 하느라 방전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평상시에는 잠만 잘 정도로 심하게 심취해 있습니다. 그는 탁월한 신체조건과 운동능력, 거기에 실력까지 겸비한 선수로 슬램덩크 세계관에서는 최상위에 위치한 실력자입니다. 농구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이성들에게 조차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농구에 완전히 미쳐있는 상태인 거죠. 이렇게 무엇인가에 미쳐있고, 자신이 하는 행동에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입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도 이런 부류 중 하나인데, 코트 위에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해 냅니다. 그는 고교 농구계에서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농구에 미친 사람답게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합니다.
그로 인해 시합에 나서면 항상 이목을 끌게 되지만, 정장 본인은 그런 이목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언제나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플레이를 통해 주장하기에 바쁩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는 일반적인 의사소통조차도 원활히 수행하지 못합니다. 단지 눈앞에 자신을 막아서는, 또는 거슬리게 하는 상대를 자신의 플레이를 통해 윽박지르려고 합니다. 그것이 설령 같은 팀원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서태웅의 이런 압도적인 실력과 개인의 신념은 북산고에 엄청난 플러스로 작용합니다. 그는 에이스였지만 아직 신인이었고, 팀 내 서열도 1학년인 만큼 그리 높지 않았기 때문에 소통의 문제가 팀에 마이너스로 작용할 일이 극히 적었죠. 또한 같은 1학년인 강백호가 이 부분에 있어서 활발히 풀어주었기도 했고, 비슷하게 농구에 미친 자들인 채치수, 정대만이라는 이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역대회에서 그는 팀의 에이스로써 묵묵히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쳐나갑니다. 그는 자신의 플레이를 통해 동료들의 긴장을 풀어주기도 하고, 하염없이 벌어진 점수차를 따라잡기도 했으며, 가장 위협적인 선수와 맞대결을 펼치며 기세싸움을 이끌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지 자신이 옳다는 주장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주장은 이윽고 겉으로 표출되어, 더 높이 오르고 싶다는 미명아래 미국행을 도모하기에 이릅니다. 안 선생님은 그런 그에게 위에는 위가 있다는 취지의 가르침과 자신을 증명하려거든 먼저 국내 최고가 돼야 할 것이라는 과제를 던져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 바로 그 국내 최고의 선수가 나타납니다. 바로 산왕공고의 정우성이죠. 서태웅은 그를 향해 자신의 투지를 불태우며 도전합니다. 서태웅은 시합 중 정우성을 아는 자들로부터 몇몇 부분에 있어 정우성과 비슷한 레벨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태껏 그래왔듯 자신의 플레이로 정우성을 윽박지르려 했고, 그것이 통하는 듯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우성이 본격적인 실력을 드러내자 플로어 위에 주저앉은 것은 다름 아닌 서태웅이었습니다.

독재자, 채치수
채치수는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자 선수로 비칩니다. 그는 학업성적이 우수했고, 북산고 농구부에서 가장 열심히 노력해 왔기 때문이죠. 그는 타고난 신체로 1학년 때부터 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지만, 사실 그의 농구실력은 그 신체만큼 뛰어나진 못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변덕규처럼 신장만으로는 일부 사람들에게 알려질 정도였지만 경쟁력 있는 학교에 부름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타고난 신체에 비해 경력도 실력도 그다지 좋지 않았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구에 대한 마음가짐과 이상은 누구보다 높았습니다. 그는 동기이자 진짜 재능을 타고난 정대만처럼 무려 전국재패를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욕심도 큰 사람이었습니다. 이 전국재패의 주역이 자신이길 바랐습니다. 이 부분에서 정대만과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대만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팀의 전력은 대폭하락했고, 3학년이 될 때까지 송태섭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전력수급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주역인 무대는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자신의 꿈을 향해 함께 해야 할 동료들 역시 가차 없이 자신의 잣대 안에 끼워넣으려한 결과 동기로는 권준호, 후배로는 송태섭, 이달재, 신오일, 정병욱, 이한나만이 남게 됩니다. 애당초 북산고는 공립이었기 때문에 정대만과 같은 MVP급 선수가 입부한 것 자체가 희귀한 일이었습니다. 채치수 같은 마음가짐으로 부활동을 하는 학생은 애당초 없었다는 것이죠. 채치수는 2학년이 끝나도록 고배를 마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그의 경력을 한 번에 바꿔줄 귀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이 그들이죠. 이렇게 자신의 팀에 두 번 다시없을 인재들이 모인 가운데 채치수는 자신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전국재패를 꿈꾸기 시작합니다. 채치수는 그들과 함께 꿈과 같은 여름을 보내게 됩니다. 인터하이 지역예선 토너먼트에서 강호 중의 강호인 상양고를 이기고 결승리그에 오르는 가 하면, 비록 석패했지만 고1 때부터 꿈꾸던 해남고와의 일전을 치렀고, 고교시절 라이벌인 변덕규의 능남고를 제압하면서 무려 전국대회에 진출하기에 이릅니다. 거기에 더해 선수로서의 평가가 수직상승하며 명문 대학팀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까지 합니다.
채치수에게 있어서 이런 경험들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들입니다. 그는 높은 위치에 올라본 적은커녕 이런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었죠. 자신이 이상으로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현실화되면서 채치수의 자신감 역시 수직 상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꿈인 전국재패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자,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왔던 산왕공고와 맞붙게 됩니다. 그는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이 고양된 상태로 경기에 임합니다. 초반 강백호와 정대만의 활약에 힘입어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자 그는 더욱 자신감이 상승하게 됩니다. 그러나 후반전에 돌입하며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산왕공고의 센터 신현철을 상대하며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게 돼버린 것이죠. 그는 심각한 자신감 하락을 보이며 급기야 플로어 위에서 혼절상태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일편단심, 송태섭
송태섭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왜소하고 농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입니다. 능남고의 유명호 감독이 스카우트제의를 하기도 했으며, 후에 그를 지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가드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능남고의 가드인 안영수는 그를 북산의 진정한 에이스 가드로 평하였고, 작중 최고의 선수인 윤대협이 시합 중 그를 경계해야겠다는 독백을 하기도 합니다. 같은 팀의 채치수 역시 그가 복귀하기 만을 학수고대하였으며, 잠시 일탈을 했던 정대만 역시 그가 자신을 대신할 기대주였기 때문에 이에 질투를 느껴 폭력을 가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주변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의 평가는 박하기만 합니다. 그는 매니저인 이한나를 짝사랑하는데, 사실 이한나 역시 송태섭에게 마음이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못내 자신감이 없던 송태섭은 이한나가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그녀를 잊기 위해서 다른 이성에게 교제 신청을 하다가 수차례에 걸쳐 차이는 소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거꾸로 이한나 쪽에서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며 둘의 관계가 발전해 가기도 합니다. 송태섭은 단순히 이한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농구를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구에 대한 미련이 크지 않았으나, 그녀의 바람이자 응원으로 더 나은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주변의 평가대로 그는 열악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빠른 순발력과 완성된 기술들을 토대로 좋은 플레이를 펼칩니다. 자신보다 장신인 선수들을 하나하나 상대해 가며 그녀의 바람대로 더 좋은 선수가 되어갑니다. 송태섭은 다른 팀원들과 달리 유독 매치업의 난이도가 높습니다. 그가 매치 업한 상대는 무려 같은 지역 내 1, 2등을 다투는 포인트 가드인 이정환, 김수겸이었고, 전국대회에 들어서는 지역 내 득점 3위의 초 공격형 장신 가드 나대룡과 전국최강의 포인트 가드인 이명헌이었습니다.
그는 코트 위에서 나름 강단 있어 보이는 모습을 연출하지만, 전국대회 1차전에서 나대룡과의 매치업을 통해 그가 자신의 열악한 신체조건에 콤플렉스가 있음이 드러났고, 급기야 산왕공고 전 결전의 전야에 자신의 열악한 신체조건으로 이한나가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압박감을 갖고 있음을 실토합니다.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사실상 농구에 대한 자신감이 아닌 이한나에 대한 마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콤플렉스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버텨왔던 것입니다.
그는 산왕공고 전에서 유독 긴장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밖으로 흘러나온 콤플렉스가 알게 모르게 작용하며 플레이를 위축시키게 되는데, 후반전 초반의 존프레스 상황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며 공황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돌아온 탕아, 정대만
정대만은 작중 손에 꼽히는 재능으로 그려집니다. 그는 중학 MVP를 따낼 만큼 뛰어난 선수였는데, 그 시절 안 선생님에게 감화되어 명문팀의 스카우트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북산고로 입학하게 됩니다. 그는 평범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농구에 대한 재능으로만 따지면 서태웅에 버금갈 정도의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고교에 입학한 직후 부상을 당하였고, 재기에 실패하며 잠정적으로 은퇴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2년간 일탈을 겪은 뒤 3학년이 되어서야 복귀하게 되는데, 사실상 중학시절까지 해온 것으로 고교농구에 도전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그는 시합을 치러가며 점점 과거에 대한 미련과 회한을 느끼게 됩니다. 상양고의 장권혁, 해남고의 신준섭과 비교되기도 하는데, 재능이 우위에 있을지언정 오랜 시간 노력한 자들의 결실을 보며 자신이 무의미하게 흘려버린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결승리그 마지막 경기인 능남고와의 시합에서는 체력부족으로 실신하며 벤치로 물러나게 되는데, 락커룸 앞에서 이것에 대해 회한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정대만은 슛에 특화되어 있는 슈터인데, 이 슈터라는 것이 능동형과 수동형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정대만은 매우 능동적인 성향의 슈터였습니다. 본인이 공을 가지든 아니든 적극적으로 득점기회를 만들어 내는 성향이었죠. 그러나 복귀한 정대만은 수동적인 성향의 슈터입니다. 에이스인 서태웅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곽에서 대기하며 공이 나오길 기다리는 전형적인 스팟업 슈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일종의 입스로도 볼 수 있는데, 그가 입학초기 돌파를 시도하다가 무릎부상을 당했었던 것과 관련지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상양고나 산왕공고 전을 앞두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과거 MVP시절의 호기롭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것으로 그가 좀처럼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국대회 2차전을 앞둔 전야에 양 팀의 비디오 리뷰가 진행됩니다. 산왕공고의 도진수 감독은 그를 공략하기 위한 별도의 전술을 마련합니다. 전반에 수비 스페셜리스트인 김낙수를 붙여서 체력을 빼놓는 것이 그것이었죠. 그러나 산왕공고 전에 앞서 안 선생님의 절묘한 심리컨트롤로 최고의 컨디션이 된 정대만은 자신감을 회복하며 과거와 같은 적극적인 플레이를 보여줍니다. 그는 연속으로 3점 슛 3개를 몰아넣으며 호조의 출발을 하며 시합의 키맨으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김낙수의 끈질긴 수비덕에 체력을 크게 소진한 정대만은 후반전이 시작된 이후 급격한 페이스 다운을 일으키게 됩니다.
일단 여기까지가 그들이 처한 상황의 대략적인 요약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단호한 결의가 필요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NO.1 가드, 송태섭
산왕공고의 존프레스에 막힌 송태섭은 신체조건에 대한 콤플렉스가 스트레스로 터지며 자멸합니다. 이로 인해 북산고의 감독인 안 선생님은 이른 시간에 작전타임을 소모하게 됩니다. 안 선생님의 지시사항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돌파하라"
송태섭은 자신의 단점만을 생각하며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최고의 가드인 이명헌이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이 작고 빠른 가드였죠. 바로 송태섭처럼 말이죠. 송태섭은 시합 전에도 안 선생님에게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포인트가드 대결만큼은 우리 쪽에 승산이 있다고 봤네만"
이 말은 그냥 한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송태섭이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보지 못해 왔었기 때문에 의미를 제대로 캐치 못 했을 뿐입니다. 여기에 더해 매니저인 이한나의 응원이 그의 자신감을 완벽하게 끌어올려줍니다. 이한나의 응원 메시지는 더욱 고난도가 되어 이제는 NO.1 가드가 되라고 합니다. 그녀의 요구가 커지는 것은 곧 그녀의 마음도 커지고 있음을 표합니다. 송태섭은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전국최고의 가드에게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밉니다.
작전타임이 끝나고 또다시 시작된 존프레스에 대해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최고 장기인 낮고 빠른 드리블로 돌파해냅니다. 이후 보컬리더로써 팀원들의 무너져가는 사기를 다시 한 번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시합의 흐름은 우리 자신이 가지고 오는 거야!"
이 말이 가진 의미는 단호한 결의와 일맥상통합니다. 송태섭은 시합 막바지에 또 다시 존프레스가 시작 됐을 때 확실하게 자신의 장점을 자각합니다. 자신이 생각했던 단점이 현재 시국을 돌파하는 최고의 무기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완벽하게 존프레스를 격파해 냅니다.
이 존프레스는 송태섭이 가진 마음의 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늘 마음에 두고 있던 열악한 피지컬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의 기대에 대한 압박감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그와 달리 자신의 열악한 피지컬보다 장점을 보고 믿어 준 스승이 있었고, 그가 충분히 해낼 수 있음을 믿어주는 연인이 늘 곁에 있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가 보여준 단호한 결의입니다. 그는 단호한 결의 속에 존프레스를 돌파해냄으로써 자신의 컴플렉스와 압박감을 이겨내며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장하게 됩니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북산고의 새로운 주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등장초기에 강백호급의 문제아 취급을 당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제는 팀을 아우르며 이끌 만큼 그가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했고, 앞으로 리더로서 더 큰 성장을 이룩할 것임을 기대하게 됩니다.

북산의 기둥, 채치수
시합도중 혼절한 그는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고 플로어에 엎어져 있습니다. 그때 머리 위로 뭔가가 떨어지는데, 바로 변덕규가 깎고 있는 무조각입니다. 변덕규는 채치수에게 설파합니다.
"화려한 도미는 신현철.
너에게 화려함이란 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넌 가자미다. 진흙투성이가 돼라."
신현철에게 처참하게 밀린 채치수는 신현철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본분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과거 신입부원 시절 정대만을 따라 하다 실책을 범하던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채치수의 존재 가치는 그런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입부원 시절부터 단 하나의 특출 난 소질로 기대를 받아 왔습니다. 바로 신체조건입니다. 그의 탁월한 신체조건은 북산고의 다른 선수들이 보다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는 버팀목이었습니다. 승승장구하며 자신의 실력에 도취되었던 그는 이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채치수는 변덕규의 일침을 곱씹어 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선수였는지 말이죠. 마침내 그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채치수는 너무 오랜 기간 혼자서 팀을 떠받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눈치채는게 늦어졌을 뿐입니다. 자신이라는 기둥 위에 팀원들이 피운 꽃을 말이죠.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팀원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그가 모든 것을 팀원들에게 맡기고 온전히 자신의 역할만 수행하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채치수는 작전타임 구간에 벤치에 앉아 과거를 회상합니다. 그리고 감정에 복받쳐 뜨거운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는 다시 한번 팀원들이 모인 가운데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맙다"
채치수는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의 동료들을 신뢰하기로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그가 보여준 단호한 결의로 볼 수 있습니다. 채치수는 시합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신현철을 블록킹 해내며 자신의 결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자유투를 성공시키며, 팀이 승리하는데 공헌하게 됩니다.
후일담에서 그는 은퇴 후에도 북산고의 농구부를 걱정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북산고를 3년간 지탱해 오며 온 짐을 짊어졌던 그의 모습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은퇴를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는 신뢰를 배웠고, 어디서든 화려한 꽃을 피워줄 기둥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포기를 모르는 남자, 정대만
정대만은 후반전 들어 급격한 체력저하를 보입니다. 그에 반해 후반전 그의 상대는 에이스급 선수인 최동오입니다. 최동오는 산왕공고의 주전 슈팅가드입니다. 최동오가 보여주는 플레이는 엄청나게 적극적입니다. 채치수를 상대로도 물러나지 않고 돌격하여 추가 자유투를 얻어내기까지 합니다. 정대만은 그런 그를 보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잘한다'
정대만은 최동오를 전혀 막아내지 못합니다. 정대만의 수비력은 서태웅조차 버거워하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이미 그의 체력이 최동오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죠. 정대만은 플로어 위에서 자신을 질타합니다. 그리고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채치수가 플로어에서 실신하였고, 변덕규가 무를 썰며 일침을 가하고 돌아가자 정대만은 그 일침에 대해 곱씹어 봅니다.
"채치수는 채치수. 나는 누구지?"
이 대사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묻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과거 속 능동적인 슈터 정대만인지, 현실의 수동적인 슈터 정대만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정대만은 어떻게든 과거 자신의 플레이를 되찾고 싶어 했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수동적인 슈터 정대만을 택합니다.
'지금의 내게서 3점 슛을 빼면 아무것도 없어'
'지금 내 눈엔 림밖에 보이지 않아'
"태섭아, 날 활용해라"
이 독백과 대사들은 그가 이미 능동적으로 움직일 체력이 없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과거 정대만의 회산씬에서 그는 공이 없어도 수비를 벗겨내는 게 슈터의 능력이라며 활발히 움직였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똑같이 해왔죠. 그러나 그런 움직임을 받쳐줄 체력이 없었기 때문에 언제나 경기 마지막에 가서는 무용의 선수가 됐던 것입니다. 그는 이제부터 자신이 그런 움직임을 가져갈 선수가 아님을 인정하고, 채치수와 송태섭에 기대어 수동적인 공격을 펼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는 서태웅에 필적할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스팟업슈터임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태웅이 그에게 1대 1 대결을 신청했을 때, 그의 대사를 통해 그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북산의 에이스인지 확실히 하는 것도 좋겠지"
이 시점까지만 해도 그 역시 자신이 아직 에이스 플레이어로써 활약할 수 있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현재의 자신을 단순한 스팟업 슈터로서 인정한 그 순간, 슈터로서의 진정한 잠재력이 폭발합니다. 그의 3점 슛이 계속해서 림을 통과하며 크게 벌어졌던 점수차가 순식간에 줄어들었고, 동료들의 활약이 더해져 산왕공고를 침몰시키게 됩니다.
에필로그의 그는 채치수, 권준호와 달리 은퇴하지 않고 계속해서 선수 생활을 이어 갑니다. 이것은 그가 현재의 시점부터 다시 노력하여 잃어버린 2년을 되돌리기 위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는 단호한 결의로부터 시작된 그의 의지가 이후로도 계속될 것임을 예상하게 합니다.

국내 최고의 고교 선수, 서태웅
정우성에게 블로킹을 당한 서태웅은 플로어에 주저앉고 맙니다. 여태까지 그의 플레이를 봐온 모두가 그 상황을 보며, 좌절합니다. 서태웅이 이렇게 지다니 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불굴의 투지를 보이며 더욱 거세게 도전합니다. 그러나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듯 무리한 슛을 던지며 자멸하는 수순으로 빠지고 있었죠. 안 선생님은 그런 그를 보면서 독백합니다.
''자넨 아직 대협군에게 미치지 못하네'. 태웅 군, 여기서는 자네가 스스로 알아내야 하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압도적인 정우성의 실력 앞에 불현듯 윤대협과의 1대 1을 떠올린 서태웅은 자신이 그리던 전국최강의 선수가 정우성임을 다시 한번 확고히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윤대협과의 대화를 떠올립니다.
"1대 1도 공격의 선택지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 그걸 깨닫지 못하는 한 내가 너에게 질 것 같진 않아"
서태웅은 지금껏 자신이 해왔던 농구를 안 선생님과 윤대협을 통해 부정당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옳고 그들이 틀렸다고 주장이라도 하듯, 풍전과의 시합에선 지금까지의 플레이를 더욱 갈고닦아서 선보였죠. 그러나 그렇게 갈고닦은 플레이가 국내 최고의 선수 앞에서 강력하게 부정당하게 된 것입니다. 서태웅은 굴욕감 대신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정을 느꼈고, 작품 내내 무표정하던 그가 드디어 미소를 짓습니다. 자신의 세상에 갇혀있던 그가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드디어 자신만의 세상에서 나온 그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플레이를 선보입니다. 그는 자신을 부정했던 윤대협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안 선생님의 일침 역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의 손으로부터 경기의 흐름을 뒤집는 패스가 채치수에게로 전달됩니다. 경기장 내 그를 아는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왜냐면 그를 겪어 본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자기 세상 안에 깊숙이 갇혀있었는지 알기 때문이죠. 서태웅은 계속해서 새로운 플레이들을 선보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알을 깨고 나오며, 자신이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상에 과감히 발을 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보여준 단호한 결의의 정체입니다.
그는 이 시점부터 경기장에 있는 그를 아는 모두가 알던 그가 아니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정우성과 동급의 플레이를 선보이며, 관중들로부터 정우성과 동급의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그는 그가 그토록 갈구하던 국내 최고의 고교 선수가 된 것입니다. 국내 최고의 선수들끼리의 격돌은 자웅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서태웅은 또 한 번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바로 강백호에게 라스트 슈팅 기회를 어시스트한 것이죠. 예전의 서태웅이었다면 자신이 직접 던졌을 상황이었지만, 그는 노마크인 강백호에게 패스하였고, 그 공이 그대로 림을 통과하며 팀은 승리하게 됩니다. 서태웅은 강백호와 처음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신만의 세상에서 완전히 탈피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에필로그에서는 청소년 국가대표가 됐음을 보여줌으로 그가 국내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음을 확인시켜줍니다.

영광의 순간, 강백호
플로어 사이드로 추락한 강백호는 등부상을 당한 뒤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벤치로 물러나게 됩니다. 채치수에게 부축되어 나오는 동안 그는 생각합니다.
'시끄럿! 여우 놈! 너 따위는 언젠가 눌러버릴 생각이었는데...'
이 독백은 그가 이미 스스로 뛸 수 없는 상태임을 자각하고 있음을 표현합니다. 더 멀리는 앞으로 영원히 농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섞여있는 독백이죠. 그는 벤치에 앉지도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있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가 됩니다. 그는 그 상태로 머릿속에서 지난 4개월이 주마등처럼 역주행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이 농구선수를 하며 즐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그 순간들이야말로 자신이 열정을 바쳐 노력했던 순간들입니다. 그는 그 주마등의 마침표에서 또다시 같은 질문을 떠올립니다. 바로 그가 짝사랑하는 그녀인 채소연의 엉뚱했던 그 질문.
"농구, 좋아하세요?"
기적적으로 일어난 그는 눈앞에 서 있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대답합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던 철없던 수개월 전의 강백호는 운명처럼 만난 농구를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 강렬했던 그 순간들은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강백호는 여기서 자신이 이토록 좋아하게 된 농구를 통해 찾은 가장 빛나는 영광의 순간을 쟁취하기 위해, 그 농구를 걸기로 결의합니다. 바로 선수생명을 말이죠.
"백호군, 자네의 이상은 바로 알았네. 그러나 멈출 수가 없었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지. 자네가 성장하는 모습을 계속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야. 난 지도자 실격일세."
"영감님. 영감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요? 국가대표 시절인가? 난 지금이야."
"영감님, 겨우 생겼어. 영감님 이 말했던 거. 단호한 결의라는 거 말이야."
강백호는 이렇게 자신의 남은 선수생명을 불태우기로 결심하고, 코트에 복귀합니다. 코트에 복귀한 그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두 연소시킬 기세로 모든 것을 불태웁니다. 그리고 한계를 초월한 그의 움직임은 그에게 승부를 결정지을 마지막 기회를 안겨줍니다. 그는 그가 농구선수로써 죽을 만큼 노력하여 터득한 점프슛을 던집니다.
"왼손은 거들뿐."
그의 손을 떠난 공은 깨끗하게 림을 통과했고, 버저비터로 기록되며 팀은 승리하게 됩니다.
그가 빠진 3차전은 거짓말처럼 패배합니다. 그리고 전국대회가 끝이난 후 그는 해변가에 앉아서 북산고의 매니저가 된 채소연의 편지를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달려 지나가려다 멈춰 선 서태웅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드러내며 자랑하고 지나치자 질투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한번 편지를 읽어 내려갑니다.
"힘내 백호야, 이 재활훈련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네가 좋아하는 농구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는 태연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이미 재활훈련을 시작했고 복귀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난 천재니까"
이 대사는 강백호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입니다. 그는 등장 초기엔 자신의 타고난 재능들을 가지고 활약합니다. 붉은 리젠트 머리에 신기에 가까운 그의 동작들이 관중의 이목을 끌어왔죠. 그러나 그는 단지 재능에만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노력했고, 농구선수가 되어 갔습니다.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가장 기본적이고 평범한 점프슛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이 점프슛이야 말로 그가 4개월간 노력해 온 결실이며, 죽을 만큼 노력해서 괴짜가 아닌 농구선수가 됐음을 보여줍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탄생한다."
마지막에 그가 스스로를 천재라고 칭한 것은 이 말의 의미를 몸소 체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호한 결의, 안한수 감독
안한수 감독은 전 국가대표선수 출신으로 농구계에서는 입지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오죽하면 상대팀 감독들이 북산고는 몰라도 안한수 감독은 알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북산고라는 무명의 공립고를 맡고 있는 것은 엄청나게 이례적인 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실로 치면 축구계의 차범근 전 국가대표감독이 해설자를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레벨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이례적인 행보를 하는 것은 지난날의 과오 때문입니다. 그가 북산고 이전 대학 감독직을 맡고 있을 때, 그의 밑에 조재중이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안한수 감독은 이때까지만 해도 도깨비 감독으로 불릴 만큼 엄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조재중이라는 재능 넘치는 선수를 자신의 신념과 철학으로 엄하게 가르치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조재중은 미국으로 도망쳐버렸고,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자 일탈행위를 하다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충격을 받은 안한수 감독 역시 현실도피를 택했고, 그 도피처가 현재의 북산고가 된 것입니다.
작품 초반에 그가 막 등장했을 때 매니저 이한나의 발언에 따르면 그는 감독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팀에 개입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작중 최고 재능 중 하나인 정대만이 일탈했을 때도 그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정대만의 일탈은 여러모로 조재중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안한수 감독이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이 두려워 처음부터 정대만에게 크게 이입하지 않으려고 벽을 쳤기 때문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위상과 달리 심각한 마음의 상처로 나약해진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런 그가 다시 한번 열정을 불태운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강백호와 서태웅의 존재 때문이죠. 강백호는 거칠지만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었고, 서태웅은 거의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방향을 정해서 나아가게 해주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안한수 감독은 매시합 이 둘에게 직접 지시를 하는가 하면, 여러 가지로 조언을 해주기도 합니다. 강백호와 서태웅 역시 아직 질풍노도의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안한수 감독에게 아주 불만이 없진 않습니다. 이 둘은 빠르게 더 나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강백호에게는 기초를 쌓도록 충분히 시간을 들였고, 서태웅에게는 더 위에 있는 실력자들을 지향하도록 지도합니다.
그의 지도방식은 조재중 때와는 완전히 바뀌어, 이제는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봐줍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그들이 이겨나가도록 지원해주고자 합니다. 안한수 감독 또한 선수들을 향해 단호한 결의를 내비치는데, 그것이 바로 산왕공고 전의 비디오리뷰입니다. 강백호가 불과 4개월 여만에 엄청나게 성장했 듯, 안한수 감독 역시 이렇게 열정을 회복한 것은 불과 수개월 남짓이었습니다. 짧은 기간에 급박하게 변화된 모든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을 겁니다. 그 역시도 선수들을 믿고 또 한 번 실패를 경험했던 자신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믿어야만 가능한 결정이었죠.
결과적으로 그는 여러 선수를 한층 더 성장시키는 것에 이바지하였고, 바로 눈앞에서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성장한 강백호와 서태웅을 보며 마침내 조재중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며....
슬램덩크의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선풍적인 인기를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많은 팬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 몹시 놀라운 요즘입니다. 슬램덩크는 90년대에 완결이 났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보면, 그 시대상이나 메시지가 잘 와닿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관통해도 변치 않는 부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우리가 청소년일 때,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고민하는 부분들이 이 작품에는 매우 사실적으로 잘 녹아들어있습니다. 단순한 열혈 스포츠물로 써가 아닌 성장 드라마로써 이 작품을 되짚어 본다면 더 깊은 감동을 느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youtu.be/I3pG3Er29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