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드래곤볼과 인플레이션
안녕하세요? 추억을 파는 리뷰어 추억파리입니다.
이번 리뷰는 예고드렸다시피 드래곤볼로 보는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스테그플레이션입니다.
인플레이션이란 팽창을 뜻합니다. 팽창은 성장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좋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이란 축소를 뜻합니다. 축소는 역성장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나쁜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공황상태를 뜻합니다. 외형적으로는 팽창하고 있으나, 역성장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최악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작품 내에서는 이러한 세가지 경향을 모두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대표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입니다.
작품이 오공의 향상심을 따라 성장하기 때문이죠.
오공이 성장함에 따라 세계관도 점점 넓어집니다. 오공은 첫 등장에서 그저 산속에 쳐박혀 살고 있는 야생소년일 뿐이였지만, 도시소녀인 부루마를 만나 모험을 시작함으로써 오공 본인과 세계관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됩니다. 독자들은 이런 오공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되죠.
소년기 오공은 거북선인과 매우 밀접하게 연동되어 성장하게 됩니다.
오공에게 매우 중요한 아이템인 근두운을 준 인물이며,
세상을 가르쳐주고, 무예를 전수해준 것이 거북선인이기 때문이죠.
또한 스토리적으로도 오공이 소년기에 초월해야할 대상으로 위치하며, 오공의 성장을 부추겼습니다.
오공은 직접적으로 거북선인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적은 없지만, 행적으로 그를 뛰어넘었음을 증명해 나갑니다. 이것은 작품내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잠시 얘기를 끊고, 세계관의 확장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세계관의 확장은 탈 것에 의해 크게 좌우됩니다. 즉 실제로 갈 수 있냐없냐가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년기에는 호이포이캡슐이 상당히 중요한 아이템으로 거론됩니다.
사이야인편에서 나메크성편으로 넘어가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많은 고민을 하기도 하죠. 이때 오공과 피콜로에게 우주인 설정을 붙여주면서 세계관이 우주까지 넓어지도록 개연성을 부여해줍니다.
우주선이 생김으로써 우주로 나아가게 된 오공들이지만 이 정도는 사실 거리적인 부분의 해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조인간편에서는 급기야 타임머신이 등장합니다.
이로써 패러렐월드 개념이 생겼고, 드래곤볼의 세계관은 사실상 무한에 가깝게 커지게됩니다.
물론 이렇게 커진 세계관이 작품내에서 적극적으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파생되는 미디어 믹스에서 활발하게 쓰여지고 있죠.
사실 이러한 인플레이션 구조는 흔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관과 인물을 만들어 가는 것은 창작자의 창의력을 무한대로 갈아넣어야하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후속작인 슈퍼에서는 페러럴월드와 멀티버스의 갯수를 제한하려는 의도도 보입니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지나친 인플레이션은 독이될 때도 있습니다.
특히나 전투력 부분이 그런데, 오공이 강해져야하고 그 극복의 대상도 따라서 강해지다보니 오공의 동료 중 일부를 제외하고는 극에 끼지도 못할 만큼 차이가 벌어져 버리곤 합니다.
이런 현상은 오공이 우주인이 된 이후로 극심해집니다. 지구인 전사들은 크리링을 제외하고는 나메크성에 발도 딛지 못하죠.
시간여행자인 트랭크스가 등장하면 이런 현상은 극에 달하게됩니다. 새롭게 아군이 된 베지타, 트랭크스를 제외 하고 모든 아군은 하향세를 면치 못합니다. 적측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주의 제왕을 자처하던 프리저 마저도 지구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순삭을 당하게 되죠.
이런 황당할 정도의 디플레이션은 세계관에도 일어납니다.
시간여행자의 등장으로 페러럴월드가 생겨났지만 작중에서는 그다지 깊게 활용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 시점부터는 모든 전사들이 지구로 밀집하게되서 세계관은 오히려 지구로 축소되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불편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됩니다.
드래곤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오공의 성장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주의 제왕을 제압했기 때문에 더 강한 우주의 적이 연달아 이어진다면 지금까지의 모험과 고난에 대한 개연성이 떨어지게 됐을 겁니다.
그래서 일단 모이기 좋은 지구를 무대로해서 최종 결전의 장을 준비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셀이라는 존재는 오공에게 있어서는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오공과 똑같이 강함을 추구하고, 오공과 같은 기술을 구사하죠.
이런 셀과 오공을 오반이 넘어서는 것은 오공이 소년시절 거북선인을 뛰어넘어 자립하는 것과 같은 의미임과 동시에 오공의 성장스토리가 끝이 남을 의미합니다.
오공의 성장이 끝이 났다는 것은 작품의 끝과 같습니다. 정확히는 오공의 이야기가 끝이 난것이죠.
그 뒤를 오반과 새로운 친구들이 대신하려는 준비가 셀게임을 통해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의 7년 이후 작품은 엄청난 디플레이션을 겪습니다. 무대도 사탄시티로 제한되고, 새로운 주인공인 오반의 전투력도 말도안되게 하락합니다. 타이틀 조차 이제는 오반이 주인공이라고 한것으로 보아, 작가는 더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자재하고 한동안은 작가의 장기인 개그물로 선회하려 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몇화 동안은 오반을 제외하곤 기존 캐릭터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세계관이 대폭 축소된 것이죠. 오반을 중심으로 새로운 확대를 했어야 됩니다.
그러나 실패했죠. 태양계를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을 주고 받는 격렬한 사투를 펼친 이후라서 그런지 이 분위기는 도저히 독자들을 설득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오공과 기존 멤버들이 투입됩니다.
예컨데 독자들이 조금만 더 참아줬다면, 오반이 독자적으로 부우와 대결하여 세상을 구하는 시나리오가 됐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마인부우편을 되짚어봤을 때 오공을 쏙 빼고 오반과 계왕신들의 진행만 갖다놔도 극의 흐름에 큰 무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럽죠.
힘을 잃은 오반이 부우에 맞서다 1차 패배, 이후 다시 잠재력을 개방하는 버프를 받고 2차 대결 후 승리. 이건 오공이 항상 하던 그것이죠. 중간에 계왕신들 외 다른 인물이 등장하여 비기인 퓨전을 오천과 트랭크스에게 전승해 주는 시나리오도 가능 했을 겁니다.
작가는 이러한 시도를 여러번 보여줍니다. 오공의 대사로 직접 얘기하죠. 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그러나 오공은 중간중간 너무 자주 개입합니다.
슈퍼사이야인3, 퓨전의 스승, 베지트, 해결사로 마인부우편에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내면서 개연성도 없고 주변의 더 강한 자들의 역할도 모조리 뭉게버리게되죠.
세계관은 과거로부터 계왕신계에 이르기까지 이제 이 우주에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팽창했지만, 오공의 성장 자체가 셀게임에서 완전히 멈췄기 때문에 작품은 어떻게든 뚜껑을 덮는데에 혈안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마인부우는 최종보스 치고는 너무 약했습니다. 시작부터 슈퍼사이야인3 오공으로 제압이 됐고,
오천크스로도 제압이 됐으며, 오반은 1차전에선 호되게 당했지만 2차전에선 그야말로 묵사발을 만들어버리죠. 제압해야할 적이 이렇게까지 약했던 적은 작품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인부우는 변태적인 방법으로 무리한 파워업이 진행됩니다. 이런 궁여지책의 무리한 파워업이 만들어낸 가짜 긴장감은 허탈감만 느끼게 합니다.
결국 작품은 오반과 신세대 캐릭터인 오천크스를 버리고, 구세대 캐릭터인 오공과 베지타를 선택합니다.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뚜껑을 덮어버리고 작품은 부랴부랴 끝이나게 됩니다.
드래곤볼은 분명 위대한 작품이지만, 에스컬레이터식 구조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인플레이션은 잘 조절하면 멋진 성장스토리가 되지만, 불이 붙기시작하면 창작자 조차도 걷잡을 수 없어 진다는 것과 필연적으로 희생되어지는 부분들이 생긴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부분은 후에 원피스나 나루토 같은 작품들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특히나 나루토는 인플레이션이 폭주해서 작품 전체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죠.
만약 드래곤볼이 인플레이션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지속된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 모습은 드래곤볼 슈퍼를 통해 조금은 옅볼 수 있습니다. 지독한 모순과 일부 캐릭터들의 설정파괴, 극단적으로 치닫는 파워인플레이션 등 과유불급이 뭔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주죠.
드래곤볼은 이번에 신 극장판에서 새로운 시간대에 오반과 피콜로가 주역인 새로운 구성을 선보입니다. 스핀오프의 개념이지만 엄연히 정사에 편입되어 있긴합니다. 다만 이 둘이 또 다른 인플레이션의 도화선이 될지는 지켜봐야겠네요.